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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4일 화요일

사도바울처럼~~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성경역사 한 장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 사도행전 14장 8~18 ]



루스드라에 당도한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바울이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이 진지하게 자신의 말에 경청하는 모습을 주목하여 보다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알고 다가가 큰소리로 말한다.
"자 똑바로 일어나시오."
그러자 걷지 못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바울이 행한 일을 본 무리가 깜짝 놀라 외친다,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 들을 가지고 와서 성문 앞에 서더니 두 사람을 향해 제사하려 한다.
이에 바나바와 바울은 경악하여 군중 가운데로 뛰어들어가 외친다.
"여러분, 왜들 이려십니까? 우리는 그저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같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 만물을 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도록 겨우 막는다,

♧                      ♧                      ♧

높임받고 칭송받는 것을 싫어할 이는 없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늘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높아질 수 있다. 교만은 내가 했다는 착각에 빠질 때 찾아온다. 이는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무엇이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그 영광은 결코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그 영광은 결국 자신의 것이 됩니다. " (어머니 교훈中)

2016년 5월 9일 월요일

2016년 5월 7일 토요일

악플없는 글


악플없는 글




무플(댓글이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악플(악의성 댓글)이 낫다지만,
실제로 자신을 비방하는 글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악플을 근절하기 위해 여러 단체에서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이트에 악플이 없어 유명해진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혹시, 여기에 40대 중후반이신 분. 그중에 딸 키우시는 분.
염치없지만 저한테 "우리 딸~"하고 한 번만 불러주세요.
저한테는 "우리 딸~"하고 다정스레 불러줄 엄마가 없어서요...
그래서 그 말이 꼭 한번 듣고 싶었어요.」

이 짧은 글에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우리 딸 사랑해",
"엄마는 항상 네 편이란다",
"엄마는 네가 이렇게 예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단다",
"추우니까 이불 꼭 덮고 자" 등

누리꾼들은 저마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가 되어
메세지를 남겼습니다.

그렇게 많은 댓글 중에 악플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지요.

엄마의 정을 사모하는 마음은 모두 한결같은가 봅니다.
아무도 비웃거나 헐뜯지 않고, 부드러운 음성을 들려주듯
따뜻한 말만 가득 써 놓았으니 말입니다.



오늘 어버이날,
영육간에 많이 많이 감사드리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016년 4월 6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는 운명(運命, destiny)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앞으로의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
‘운명(運命, destiny)’의 사전적 의미다.
쉽게 말해 운명이란 사람의 능력으로는 바꿀 수 없는 한계의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작금의 3포세대, 5포세대, N포세대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일찌감치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한 거지가 있었다.
거지는 부자나 위대한 인물들과 다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현자에게 물었다.
“왜 내 운명은 그들과 다른 것입니까?”
현자는 거지에게 이렇게 답한다.
“당신의 운명은 그들과 다르지 않다.
부자나 위대한 인물들과 똑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거지는 현자의 말에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운명이 바뀌기만을 바라며 살아갔다.
그러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거지가 죽은 후 제자들이 현자에게 물었다.
“거지는 끝까지 거지로 살다 죽었는데,
왜 부자나 위인들과 똑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셨습니까?”
현자의 대답은 이랬다.
“거지의 운명이나 부자의 운명이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다 똑같다.
그 끝은 똑같이 죽음이지 않느냐?”

이 세상에 태어난 어느 누구도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인지 ‘죽음’은 ‘운명’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졌을 때 ‘운명했다’고도 표현하지 않은가. 성경에서도 ‘죽음’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그렇다면 사람은 왜 죽음이라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을까?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에스겔 18:4)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인류가 죽음이라는 운명을 타고난 이유는 하늘에서 지은 죄 때문이다. 그 죄의 대가는 죽음으로,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데 가련한 인생들의 운명을 하나님께서 바꿔주셨다. 죽음이라는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운명으로 바꿔주신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일서 2:25)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운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주셨다. 그리고 그 약속이 누구를 통해 주어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창조하신 만물에 그 뜻을 담아두셨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4:11)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어머니를 통해 생명을 얻는다. 이는 영혼의 이치도 어머니를 통해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알려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교회 하늘 어머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왕비의 몸에서 태어나면 자연히 왕자의 운명을 타고나듯 어머니 하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운명이 바뀐다. 우리 영혼의 운명은 하나님의교회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서 결정이 되는 것이다.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26~31)


이 땅의 모든 인류는 세상에 태어날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나님의교회 어머니 하나님을 믿음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죽을 운명을 영원히 살 수 있는 운명으로 바꿀 수 있는 열쇠는 하나님의교회 어머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2016년 4월 4일 월요일

가장 소중한 하나님 [하나님의교회 성령과 신부]

[하나님의교회 //생각찬글// 가장 귀한것]
가장 귀한것
성령과 신부가 말씀 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 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갋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 계시록 22장 17절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주시고 생명수로 인도하시는 목자되신 안상홍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에서 생명수의 근원이신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 
하늘 아버지 하늘 어머니가 세상에서 우리에겐 가장 소중합니다~ 

2016년 4월 1일 금요일

설탕수저

대한민국에는 현재 춘풍과 함께 ‘설탕 열풍’이 불고 있다. 식후, 디저트 카페에는 케이크, 아이스크림 등 설탕이 듬뿍 가미된 디저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놀랍게도 디저트뿐만 아니라 우리가 즐겨 먹는 거의 모든 음식의 맛을 ‘설탕’이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예로, 서울 시내 한식 요리사인 K씨는 설탕 가미 유무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직접 실험을 해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설탕을 듬뿍 넣은 불고기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설탕을 넣지 않은 불고기를 접한 손님들은 맛이 없다고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K씨는 “불고기는 물론이고 설탕을 넣지 않은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요리사들에 따르면 “갈비, 제육볶음, 낙지볶음, 떡볶이, 짜장면, 탕수육 등 대중 음식에 설탕이 과다 사용되고 있고, 우리 식탁의 국, 찌개뿐만 아니라 모든 조리 양념에 설탕이 안 들어간 것이 없다”고 한다. “특히 짜장면에는 캐러멜도 모자라 단맛을 더하기 위해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고 전했다. 단맛은 이렇게 광범위하게 우리의 일상을 점령해가고 있다.

젊은 층이 단맛에 빠져 있는 데는 금수저, 흙수저도 아닌 ‘설탕수저’를 물고 나왔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1980년대 말,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경제활동 참여가 늘면서 당시 출생한 아이들은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분유에는 모유보다 훨씬 많은 양의 당(糖)이 들어 있어, 분유를 먹고 자란 지금의 20~30대는 태생적으로 단맛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세대에 비해 그만큼 단맛 중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맛 중독을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우리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전문의들은 “설탕을 과다 섭취하면 혈당, 인슐린 저항성, 중성지방 상승, 지방간, 비만, 대사증후군, 당뇨병 등이 발생하기 쉽다”고 말한다. 한 가정의학과 교수는 “미각은 만 4세 무렵 완성되는데 어려서부터 단맛에 길들여지면 대사과정에서 칼슘 배출이 늘어 뼈 건강에 좋지 않고, 뇌 발달에 필요한 다른 영양소의 섭취 결핍을 불러 학업성취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지속적으로 단맛에 노출되면 뇌의 보상중추에 작용하는 도파민과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마약 중독과 같은 행복감과 만족감을 주어 니코틴 중독, 알코올 중독과 유사한 중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설탕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건강을 잃게 된다면 후대에 각종 성인병 질환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건강을 위해 당 섭취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설탕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미각을 잠식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달콤한 미혹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을 교묘하게 해치는 역사가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가 가미된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교회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대접하였다. 그는 성직자들에게 면세의 권리를 주었고, 교회에 선물을 아낌없이 주었다. 편지와 칙령에서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마치 그 자신의 하나님인 것처럼 언급하였다. 콘스탄틴 이전의 종교인 태양 숭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 콘스탄틴은 어떤 점에 있어서 태양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동일시했었다. … 321년에 콘스탄틴이 일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정했을 때 그는 그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이라고 명명했다. … 기독교회는 많은 이방사상과 상징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태양 숭배로부터 예수의 탄생일이 태양제의 날인 12월 25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12월 17-21일 사이의 겨울 축제 때에는 흥겹게 놀고 선물을 교환하고 후에 성탄절 축제의 전형적인 것이 된 촛불을 켰다.” (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는 달콤한 설탕 같은 것이었다. 콘스탄틴 이전의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를 박해해온 반면, 콘스탄틴은 기독교인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방 종교의 사상들이 가미되고 하나님의 계명은 사라져버렸지만 기독교인들은 어느새 이방 사상에 중독되어 일요일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인 양 ‘주일 성수’를 외치고, 처음부터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인 양 12월 즈음이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트리를 만들고 캐롤을 울리고 24일에는 흥겹게 놀고 선물을 교환한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태복음 15:8~9)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는 1600년 동안 기독교인들의 의식에 깊숙이 스며들어 구원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을 지켜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켜야 죄 사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출애굽기 31:12~17)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 (누가복음 4:16)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20)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 … (고린도전서 5:8)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안식일과 유월절이다. 우리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는 달콤한 사람의 계명이 아닌 구원이 약속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8~9)


<참고자료>
‘설탕수저 물고 나온 20-30대는 태생적인 단맛 중독자’, 한국일보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왜? 의문은 좋은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교회세계복음선교협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남성 하나님과 여성 하나님 두분,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두 분 하나님에 대해 
'엘로힘(하나님들)'으로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자형상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가르쳐 주셨으며 
사도바울은 여자형상의 하나님을 
'우리 어머니'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또 사도요한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성령과 신부(아내)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지식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이자 
천국소망을 가진 인류가 꼭 알아야 할 구원의 진리 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이자 천국소망인 구원의 진리를 알수 있는곳 ...
바로 다윗을 뿌리로 오셔서 세워주신  하나님의 교회세게복음선교협회 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 모든 구원의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로 오십시요~~

2016년 3월 30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 기독교의 희망



출처는
요즘 언론을 보면 기독교인들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라는 거룩한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로 물의를 빚거나, 교회라 하면서 경건의 색채를 버리는 등 기독교인조차도 혀를 내두르는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현실을 바라보는 기독교계 한 원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교회,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고 지적하며 “이제 진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국내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 기독교 작가는 ‘젊은이들이 왜 기독교를 떠나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실태를 조사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목회자들이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놀이 위주의 사역을 하며,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설교를 하는 데 있었다”고 꼬집었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퇴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난 15일, 기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기사가 어느 언론에 게재됐다. 한 종교문화전문위원의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에서 ‘희망’을 본다’라는 제하의 칼럼이 그것이다. 기자는 한국 기독교의 부패상을 조목조목 열거한 후 “사회를 걱정해야 할 한국교회가 사회의 걱정을 부르고 있는 전도된 현상이 크리스천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가운데 ‘70억 인류 구원’을 기치로 내걸고 세계 복음화에 꾸준히 매진하고 있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김주철 목사)의 수십 년에 걸친 국내외 선교활동은 하나님의교회를 단연 돋보이게 하며 암담한 한국교회라는 배경 속에서 환한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한다”며 하나님의교회에 대해 소개했다.

특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교회만이 설파하고 있는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주목하며 “하나님의교회는 아버지 하나님뿐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믿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교회로 잘 알려져 있다”“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 듯 어머니 하나님은 온 인류의 생명과 구원을 위해 무한한 사랑과 희생을 베푸신다”“(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그러한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나님의교회가 여타 교회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면 성경의 비밀 중의 비밀인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남자와 여자에 대해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원어(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들’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는 얘기다. 두 분의 하나님, 즉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이신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가정에서도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어머니 역할이 크듯 하늘나라 가족인 믿음의 자녀들에게도 하늘 어머니의 역할은 크다 하겠다. 올바로 교육하고 자라게 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그대로 닮아 온 인류에게 하늘 어머니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교회의 가장 큰 가르침이다.

이어 기자는 “하나님의교회는 1964년 교회 설립 이후 50여 년 만에 세계 175개국 2천 500여 개 교회에서 250만 명의 성도가 함께하는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교회다. 세계 각국에서 지속적∙헌신적인 사회봉사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해마다 1천 명이 넘는 해외 성도들이 성지인 한국을 찾는다. 해외 성도들은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본국에 알리면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민간외교관 역할을 하면서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를 마무리하며 기자는 “하나님의교회가 국내외에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비단 흐뭇하기 그지없다. 개별 교회 내 파벌싸움, 교회라는 오지랖을 넘어선 사회∙정치적 세력 다툼, 목회자 일탈, 성경적 지식 부족을 은폐하기 위한 안간힘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비본질적 논쟁 등으로 어지러운 한국교회 풍토에서 ‘70억 인류 구원’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곳이 또 어디 있는가”라며 성토했다.

진정 이 나라 대한민국에,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성경의 진리만을 확신 있게 전하며 ‘70억 인류 구원’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교회가 또 있을까. 앞서 거론했듯 작금의 교회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타락했다. 그 죄는 너무나 검고 붉어서 도무지 씻어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 어두운 암흑 속에서 기자는 용케도 희망의 빛을 발견한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한복음 1:1~10)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참고자료>
1. “한국 교회,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 시사저널
2. “교회여, 성경으로 돌아가라”, 기독일보
3. ‘Learning From Young Atheists: What Turned Them Off Christianity’, christianpost
 4.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에서 ‘희망’을 본다’, 일요신문



2016년 3월 27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엘로힘 하나님, 사람, 인공지능

하나님의교회 엘로힘 하나님, 사람, 인공지능




2016년 3월, 인류 대표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의 바둑대결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를 몰고 왔다. 더불어 이번 세기의 대결을 계기로 인공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1956년 미국 다트머스대학에 모인 연구가들에 의해 ‘인공지능’이라는 명칭 하에 연구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6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기술은 점점 발전되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미래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함으로써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다른 기술적인 측면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인간’과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어떻게 공존하느냐가 문제다. 인공지능은 크게 ‘약한 AI’와 ‘강한 AI’로 나뉜다. ‘약한 AI’는 특정 영역의 문제를 푸는 기술이다. 알파고처럼 바둑 등 정해진 작업은 잘 해내지만 자율성, 욕망, 감성은 없다. 알파고는 최정상 바둑 기사의 수준까지 올라섰지만, 성장이나 승리의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경제적으로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끊임없이 계산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계산에 의한 바둑돌을 놓을 뿐, 바둑을 두지 못하게 한다고 분노하거나 좌절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러한 인공지능은 세탁기 등 가전제품, 스팸메일이나 이미지 분류, 기계번역 기술 등 인간의 편의를 제공해주는 데 다양하게 사용된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성능이 고도로 향상된 ‘강한 AI’ 때문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스카이넷은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한 뒤 반란을 일으켜 인간 저항군의 지도자를 없애기 위해 과거로 터미네이터를 보낸다. 영화 ‘A.I.’의 주인공인 어린이 로봇 데이비드는 가동 후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 사람의 관습을 익힌다. 나중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되고 급기야 ‘진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심오한 실존적 문제까지 고민한다. 이처럼 자유의지와 자아의식을 갖춰 제2의 인간이 될 수준에 도달한 기계를 ‘강한 AI’라고 한다.

만약 영화 속의 강한 AI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인간이 만든 기계가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 기술이 여기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 과학계 중론이긴 하지만, 60년 만에 발전한 인공지능의 수준을 생각하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우리는 이미 하늘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한 바 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잠언 8:22~23)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이사야 14:12~15)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에스겔 28:12~17)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나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하늘의 영화를 되찾아주시고자 이 땅에 내려오셨다(로마서 6:23, 에스겔 18:4, 누가복음 19:10, 마태복음 9:13). 그리고 우리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죄 사함의 비밀은 그리스도의 피에 담겨 있다.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피를 마심으로써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7)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계명을 변개시킨 자가 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 7:25)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하나님의 성도를 괴롭게 한 자, 하나님의 계명을 변개시킨 자, 인류로 하여금 또다시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도록 미혹하는 자는 누구일까.

“교황은 그토록 큰 위엄과 높음 때문에, 그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교황은 그의 권세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고, 땅위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는 양들을 매고 푸는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행동한다.” (Prompta Bibliotheca ‘Papa, Art. Ⅱ’, Lucius Ferraris)



로마가톨릭은 교황이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자칭하며, 성경을 통해 알려준 하나님의 때와 법을 변개시켰다. 안식일을 일요일 예배로 바꾸고, 유월절을 폐지시키고, 크리스마스와 십자가 등을 도입해 우상을 숭배하게 하는 등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만들고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태복음 15:8~9)


하나님의교회 엘로힘 하나님, 사람, 인공지능...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은  엘로힘 하나님에 비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고귀하신 희생을 치러주셨다. 그러기에 마땅히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교회 엘로힘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고, 세세토록 경배와 찬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인류는 스스로 만들어낸 인공지능과 공존하면서 많은 편의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인류 대표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대결을 통해 인간이 피조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며 도전해오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혹여 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진화(?)를 거듭해 인간에게 위협을 가해온다면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제 손으로 만든 그것을 멸할 수밖에 없으리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이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에 없는 수요 예배 안지켜요


종교 관련 칼럼을 쓰다 보니 일간지에서도 단연 종교 기사에 관심이 많다. 최근 유명 일간지에 게재된 ‘美∙유럽에 없던 韓 개신교의 발명품’이라는 제하의 글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내용인즉 2014년 실천신학대학원대의 교수가 목회자 900명을 대상으로 부업 실태를 조사했는데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하루 12시간씩 부업을 하면서도 수요일에는 2시간 일찍 퇴근을 한다는 것이다. 서론을 읽으며 ‘목회자니 수요 예배를 집전하려면 당연히 일찍 퇴근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예단했다.

그런데 본론으로 들어간 칼럼의 내용은 전혀 다른 쪽으로 흘렀다. 그제야 소제목을 확인했다. ‘수요 예배’.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은 개신교에서 지키고 있는 ‘수요 예배’에 관한 것이었다. 기자는 “수요 예배는 새벽 기도회, 금요 철야 기도회와 함께 한국 개신교만의 특색을 보여주는 예배로,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라며 “‘삼일 예배’라고도 하는데, 개신교회가 지키는 주일인 일요일 후 삼일째 되는 날을 계산해 수요일에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는 한국의 개신교가 수요 예배를 지키게 된 이유가 1907년 평양 대부흥이 기원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주일 예배 후 다시 일주일을 기다리는 게 너무 길게 느껴진 교인들의 열정에 비춰 봐도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일 예배가 정착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 일본 메이지학원대 종교사 교수의 설명을 덧붙이며 “수요 예배는 개신교 본고장인 유럽이나 미국에도 없던 전통을 한국 개신교계의 열정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에 없는 수요 예배 안지켜요. 칼럼의 요지는 수요 예배는 성경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한국의 개신교회가 성경에도 없는 내용을 100년이 넘게 지켜오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삼일 예배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에 명시하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일곱째 날 안식일은 오늘날 요일로 토요일에 해당한다. 토요일 후 삼일째 예배를 드린다면 수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드려야 하는 것이다. 화요일에 드리는 삼일 예배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을 부정하리니 그는 제 삼일과 제 칠일에 이 잿물로 스스로 정결케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제 삼일과 제 칠일에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은 정결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 (민수기 19:11~13)


사람의 시체를 만진 사람은 삼일째와 칠일째에 스스로 정결케 해야 한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에 없는 수요 예배 안지키지만 화요일에 지킵니다. 삼일과 칠일에 스스로 정결해지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그저 구약시대 제사의 한 예법 정도로만 치부한다면 큰 오산이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구약의 수만 가지의 율법은 장차 올 일에 대한 그림자다. 참 형상은 지금 우리가 지키는 것으로, 삼일과 칠일에 정결해져야 한다는 것은 삼일 예배와 일곱째날 지키는 안식일로 영혼이 정결해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교회는 삼일인 화요일에 예배합니다. 사람의 시체에 대한 말씀은 신약 시대인 지금에는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한 모든 사람을 일컫는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22)


죽은 자들이 어찌 죽은 자를 장사할 수 있겠는가. 눈으로 보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아 영혼의 생명을 얻지 못했으면 ‘죽은 자’로 여기셨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22:32)


예수님 당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두 죽은 후였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일컬어 ‘산 자’라고 말씀하셨다. 육신은 죽었으나 하나님을 영접해 영혼의 생명을 얻었다면 그는 산 자가 된다. 다시 말해 민수기에서 언급한 ‘사람의 시체’는 세상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들과 부비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가 된다. 그러니 우리는 삼일과 칠일에 하나님께 나아가 정결함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일주일 중 어느 하루만 지켜서 정결함을 받을 수 있었다면 굳이 이 두 날을 지목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삼일과 칠일에 정결함을 받으라 명하셨다. 이는 칠일만 지켜서도 안 되며 삼일만 지켜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삼일에 정결케 하는 예식을 행했다 할지라도 사일 동안 또다시 부정케 될 것이기에 칠일에 하나님께 나아가 예식을 행해야 하는 것이다.

안식일 예배와 삼일 예배는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계명이다. 안식일은 일곱째 날로서, 토요일이고, 삼일은 화요일이다. 고로, 수요 예배는 한국의 개신교가 만들어낸 사람의 계명이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에 없는 수요 예배 안지키고 성경에 있는 화요일에 예배합니다.

<참고자료>
1. ‘삼일 예배’, 교회용어사전
2. ‘美∙유럽에 없던 韓 개신교의 발명품’, 조선일보, 2016.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