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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일 금요일

설탕수저

대한민국에는 현재 춘풍과 함께 ‘설탕 열풍’이 불고 있다. 식후, 디저트 카페에는 케이크, 아이스크림 등 설탕이 듬뿍 가미된 디저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놀랍게도 디저트뿐만 아니라 우리가 즐겨 먹는 거의 모든 음식의 맛을 ‘설탕’이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예로, 서울 시내 한식 요리사인 K씨는 설탕 가미 유무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직접 실험을 해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설탕을 듬뿍 넣은 불고기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설탕을 넣지 않은 불고기를 접한 손님들은 맛이 없다고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K씨는 “불고기는 물론이고 설탕을 넣지 않은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요리사들에 따르면 “갈비, 제육볶음, 낙지볶음, 떡볶이, 짜장면, 탕수육 등 대중 음식에 설탕이 과다 사용되고 있고, 우리 식탁의 국, 찌개뿐만 아니라 모든 조리 양념에 설탕이 안 들어간 것이 없다”고 한다. “특히 짜장면에는 캐러멜도 모자라 단맛을 더하기 위해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고 전했다. 단맛은 이렇게 광범위하게 우리의 일상을 점령해가고 있다.

젊은 층이 단맛에 빠져 있는 데는 금수저, 흙수저도 아닌 ‘설탕수저’를 물고 나왔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1980년대 말,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경제활동 참여가 늘면서 당시 출생한 아이들은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분유에는 모유보다 훨씬 많은 양의 당(糖)이 들어 있어, 분유를 먹고 자란 지금의 20~30대는 태생적으로 단맛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세대에 비해 그만큼 단맛 중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맛 중독을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우리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전문의들은 “설탕을 과다 섭취하면 혈당, 인슐린 저항성, 중성지방 상승, 지방간, 비만, 대사증후군, 당뇨병 등이 발생하기 쉽다”고 말한다. 한 가정의학과 교수는 “미각은 만 4세 무렵 완성되는데 어려서부터 단맛에 길들여지면 대사과정에서 칼슘 배출이 늘어 뼈 건강에 좋지 않고, 뇌 발달에 필요한 다른 영양소의 섭취 결핍을 불러 학업성취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지속적으로 단맛에 노출되면 뇌의 보상중추에 작용하는 도파민과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마약 중독과 같은 행복감과 만족감을 주어 니코틴 중독, 알코올 중독과 유사한 중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설탕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건강을 잃게 된다면 후대에 각종 성인병 질환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건강을 위해 당 섭취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설탕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미각을 잠식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달콤한 미혹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을 교묘하게 해치는 역사가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가 가미된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교회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종교로 대접하였다. 그는 성직자들에게 면세의 권리를 주었고, 교회에 선물을 아낌없이 주었다. 편지와 칙령에서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마치 그 자신의 하나님인 것처럼 언급하였다. 콘스탄틴 이전의 종교인 태양 숭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 콘스탄틴은 어떤 점에 있어서 태양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동일시했었다. … 321년에 콘스탄틴이 일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정했을 때 그는 그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이라고 명명했다. … 기독교회는 많은 이방사상과 상징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태양 숭배로부터 예수의 탄생일이 태양제의 날인 12월 25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12월 17-21일 사이의 겨울 축제 때에는 흥겹게 놀고 선물을 교환하고 후에 성탄절 축제의 전형적인 것이 된 촛불을 켰다.” (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는 달콤한 설탕 같은 것이었다. 콘스탄틴 이전의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를 박해해온 반면, 콘스탄틴은 기독교인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방 종교의 사상들이 가미되고 하나님의 계명은 사라져버렸지만 기독교인들은 어느새 이방 사상에 중독되어 일요일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인 양 ‘주일 성수’를 외치고, 처음부터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인 양 12월 즈음이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트리를 만들고 캐롤을 울리고 24일에는 흥겹게 놀고 선물을 교환한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태복음 15:8~9)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는 1600년 동안 기독교인들의 의식에 깊숙이 스며들어 구원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을 지켜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켜야 죄 사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출애굽기 31:12~17)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 (누가복음 4:16)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20)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 … (고린도전서 5:8)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안식일과 유월절이다. 우리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는 달콤한 사람의 계명이 아닌 구원이 약속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8~9)


<참고자료>
‘설탕수저 물고 나온 20-30대는 태생적인 단맛 중독자’, 한국일보

2016년 3월 27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엘로힘 하나님, 사람, 인공지능

하나님의교회 엘로힘 하나님, 사람, 인공지능




2016년 3월, 인류 대표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의 바둑대결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를 몰고 왔다. 더불어 이번 세기의 대결을 계기로 인공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1956년 미국 다트머스대학에 모인 연구가들에 의해 ‘인공지능’이라는 명칭 하에 연구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6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기술은 점점 발전되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미래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함으로써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다른 기술적인 측면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인간’과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어떻게 공존하느냐가 문제다. 인공지능은 크게 ‘약한 AI’와 ‘강한 AI’로 나뉜다. ‘약한 AI’는 특정 영역의 문제를 푸는 기술이다. 알파고처럼 바둑 등 정해진 작업은 잘 해내지만 자율성, 욕망, 감성은 없다. 알파고는 최정상 바둑 기사의 수준까지 올라섰지만, 성장이나 승리의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경제적으로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끊임없이 계산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계산에 의한 바둑돌을 놓을 뿐, 바둑을 두지 못하게 한다고 분노하거나 좌절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러한 인공지능은 세탁기 등 가전제품, 스팸메일이나 이미지 분류, 기계번역 기술 등 인간의 편의를 제공해주는 데 다양하게 사용된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성능이 고도로 향상된 ‘강한 AI’ 때문이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스카이넷은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한 뒤 반란을 일으켜 인간 저항군의 지도자를 없애기 위해 과거로 터미네이터를 보낸다. 영화 ‘A.I.’의 주인공인 어린이 로봇 데이비드는 가동 후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 사람의 관습을 익힌다. 나중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되고 급기야 ‘진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심오한 실존적 문제까지 고민한다. 이처럼 자유의지와 자아의식을 갖춰 제2의 인간이 될 수준에 도달한 기계를 ‘강한 AI’라고 한다.

만약 영화 속의 강한 AI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인간이 만든 기계가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 기술이 여기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 과학계 중론이긴 하지만, 60년 만에 발전한 인공지능의 수준을 생각하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우리는 이미 하늘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한 바 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잠언 8:22~23)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이사야 14:12~15)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에스겔 28:12~17)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나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하늘의 영화를 되찾아주시고자 이 땅에 내려오셨다(로마서 6:23, 에스겔 18:4, 누가복음 19:10, 마태복음 9:13). 그리고 우리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죄 사함의 비밀은 그리스도의 피에 담겨 있다.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피를 마심으로써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7)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계명을 변개시킨 자가 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 7:25)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하나님의 성도를 괴롭게 한 자, 하나님의 계명을 변개시킨 자, 인류로 하여금 또다시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도록 미혹하는 자는 누구일까.

“교황은 그토록 큰 위엄과 높음 때문에, 그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교황은 그의 권세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고, 땅위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는 양들을 매고 푸는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행동한다.” (Prompta Bibliotheca ‘Papa, Art. Ⅱ’, Lucius Ferraris)



로마가톨릭은 교황이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자칭하며, 성경을 통해 알려준 하나님의 때와 법을 변개시켰다. 안식일을 일요일 예배로 바꾸고, 유월절을 폐지시키고, 크리스마스와 십자가 등을 도입해 우상을 숭배하게 하는 등 하나님을 대적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만들고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태복음 15:8~9)


하나님의교회 엘로힘 하나님, 사람, 인공지능...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은  엘로힘 하나님에 비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고귀하신 희생을 치러주셨다. 그러기에 마땅히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교회 엘로힘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하고, 세세토록 경배와 찬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인류는 스스로 만들어낸 인공지능과 공존하면서 많은 편의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인류 대표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대결을 통해 인간이 피조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며 도전해오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혹여 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진화(?)를 거듭해 인간에게 위협을 가해온다면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제 손으로 만든 그것을 멸할 수밖에 없으리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이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