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Jonah Cast Forth by the Whale, Gustave Dore 作
BC 760년경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를 앗수르(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니네베)로 파송하셨다. 현재 IS(이슬람국가)가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 모술 지역이다.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던 앗수르는 이웃 나라들을 차례차례 정복하며 최초로 오리엔트를 통일한 제국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당시 앗수르는 주변국들을 호시탐탐 노리며 위협해 왔기에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최대 적국이었다. 우상 숭배가 만연한 것은 물론, 전쟁 포로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었으며, 약탈, 살육 등 죄악이 극에 달했다.
전혀 말씀이 먹힐 리 없는 그런 곳에 가서 “사십 일 후면 무너지리라”고 외치라니, 지금으로 치면 IS의 거점지역이나 북한의 평양쯤 되는 곳에 가서 “너희 곧 망한다”고 외쳐야 하는 셈이었기에 요나로서는 사지로 들어가는 심정이었으리라.
더욱이 앗수르가 최강대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험 부담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요나는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아주 멀리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도피처로 택한 곳이 다시스였다. 다시스는 스페인 남부해안의 고대 도시 타르테소스로 추정되는 곳으로, 욥바(지금의 텔아비브야파)에서 약 3,500km나 떨어진 곳이다.
요나는 욥바로 가서 다시스행 배에 올랐다. 하지만 배가 폭풍우를 만나 침몰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승선자들은 재앙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다. 요나가 제비에 뽑혔다. 결국 요나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했다. 요나는 그렇게 바닷속으로 던져졌고, 폭풍우가 그쳤다.
요나는 거대한 물고기 배 속에서 3일을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를 드린다. 이 일은 장차 예수님께서 3일간 무덤에 장사되었다 부활하시는 사건의 예표가 되기도 한다.
학자들은 요나를 삼켰던 큰 물고기를 향유고래로 추정하고 있다. 사람이 고래 배 속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다는 일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 실제로 고래 배 속에서 살아 나온 사람이 또 있다.
1891년 2월, 영국의 포경선 한 척이 남대서양에서 고래 사냥을 하고 있었다. 선원들은 멀리 바다를 유영하는 향유고래 떼를 발견하고는 두 척의 보트를 내려 고래 무리들 가까이 다가갔다. 작살을 던지자 고래가 고통으로 몸부리쳤다. 그러더니 이내 바닷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선원들은 조금 있으면 고래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래는 선원들이 타고 있던 보트를 덮쳤고, 그중 한 선원은 고래밥이 되고 말았다. 제임스 바틀리라는 선원이었다.
그날 밤 결국 죽어서 수면 위로 떠오른 고래를 포획한 선원들은 분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고래의 내장이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내장을 갈랐다. 놀랍게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제임스 바틀리가 기절한 채 살아 있었다.
고래 배 속에서 무려 15시간 동안이나 있었던 제임스 바틀리는 고래의 위액으로 인해 피부가 하얗게 탈색되고 온몸의 털이 모두 빠진 상태였다. 그는 한 달가량의 치료를 받은 후 고래 배 속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가 고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작은 이빨에 찔리는 고통을 느꼈고, 곧 내장으로 옮겨졌는데 그 안은 상당히 따뜻하고 소량의 공기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장이 수축하는 느낌을 받은 후 정신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1909년 사망한 그의 묘비명에는 ‘현대판 요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전해진다.
제임스 바틀리보다 먼저 물고기 배 속에서 살아 나온 체험을 한 요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하고, 니느웨로 향한다. 니느웨는 도보로 한 바퀴 도는 데만 3일이나 걸릴 만큼 큰 도시였다. 사지로 들어가는 심정이었을 테지만 요나는 담대히 니느웨 사람들에게 외친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나온다. 아슈르 단 3세(Ashur-dan Ⅲ)로 추정되는 왕이 온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한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되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께서 혹시 그 뜻을 돌이키셔서 진노를 그치시고 우리를 멸망하시지 않을지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인들이 금식하며 회개하자 그들에게 내리려고 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요나의 말대로라면 니느웨는 무너졌어야 했다. 그러나 니느웨는 건재했다. 요나는 화가 났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자기가 실없는 사람, 거짓말한 사람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 제가 고국에 있을 때 이렇게 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급히 다시스로 도망한 것 아닙니까? 이제야 저는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이 크셔서 뜻을 돌이키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 원하옵건대 이제 제 생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습니다.”
요나가 분노에 찬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
이후, 요나는 니느웨 성 밖 동쪽에 초막을 지었다. 그늘 아래 앉아 니느웨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볼 요량이었다. 그는 죄악으로 얼룩진 도시가 어떤 재앙을 당할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나님께서는 박넝쿨로 그늘을 지게 하여 그의 머리를 가려주셨다. 시원한 그늘 아래 있다 보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보니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먹고 만 것이다. 해가 뜨자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해는 그의 머리를 더욱 뜨겁게 내리쬐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혼곤해진 요나는 또다시 하나님께 “사느니 차리리 죽는 게 낫다”고 불평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하문하셨다.
“네가 이 박넝쿨 때문에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냐?”
요나는 “제가 죽고 싶을 만큼 화낼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고 상답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고 하룻밤 사이에 났다가 하룻밤 만에 시들어 죽은 이 박넝쿨도 아까워하면서 하물며 이 큰 니느웨 성에는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12만 명이나 살고 있고 가축도 많이 있는데 내가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왜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으신 것일까. 만약 요나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치지 않았다면―결국 거짓말이 되어버렸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여전히 죄악 속에 살았을 것이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모든 인류를 향한 자비와 사랑을 깨우쳐주고자 하신 것이다. 이 시대 구원자로 임하신 성령과 신부께서 전 세계 70억 인류의 구원을 바라시는 것처럼 말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
<참고자료>
1. ‘이슬람국가’, 한경 경제용어사전
2. ‘다시스’, 라이프성경사전
3. ‘성서 속의 불가사의’, 동아출판사
4. ‘성서 그리고 역사’, 황소자리
5. ‘요나와 고래’, 네이버 지식백과
6. ‘요나’, 라이프성경사전
요나처럼 열심히 힘차게 전해요
답글삭제70억 모든 인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전도하겠습니다.
답글삭제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 시대의 표적은 요나의 전도입니다^^
답글삭제요나가 회개하고 더욱 열심히 전하였던 것처럼 저도 게을렀던 모습을 모두 회개하고 더욱 열심히 전도하겠습니다.
답글삭제요나가 회개하던 순간을 기억하며..!!
답글삭제잊지않아야 겠어요
요나가 회개함으로 12만명이 살았듯이 요나처럼 회개하고 전도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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